석인, 돌이 된 인간
“러브크래프트 서클”은 H. P. 러브크래프트를 중심으로 세계관을 공유하는 일군의 작가와 그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려는 시도입니다.
「석인, 돌이 된 인간 The Man of Stone」(이하 '석인')은 러브크래프트가 헤이즐 힐드와 작업한 작품 중에 첫 번째에 해당합니다. 힐드와 공저자로 발표한 총 5편의 작품 모두 대필에 가까울 정도로 러브크래프트의 관여도가 높습니다. 다만 이 「석인」의 경우는 스토리 구상 수준이든 시놉시스 수준이든 힐드의 의견이 다른 작품에 비해 많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서는 이례적인 (그리고 러브크래프트가 극히 싫어했던) 로맨스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데요. 그것도 삼각관계에 불륜인데, 이는 힐드의 의견이 아닌 한 러브크래프트가 자신의 작품에 반영한 예가 거의 없다시피 하죠.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돌싱이었던 러브크래프트와 힐드 간의 염문설이 돌기도 했는데요. (또 다른 대필 의뢰인이었던 질리아 비숍과도 염문설이 나기도 했습니다만.)
시기적으로 러브크래프트는 1930년대 초반 질리아 비숍과의 작업 이후 작품 활동에 침체기를 겪었고 작품수도 현저히 줄어듭니다. 러브크래프트가 1937년 사망할 때까지 대필로 근근이 작품 활동을 이어갔던 중요한 연결 고리 중에 힐드가 있었지요. 힐드는 러브크래프트 사후인 1944년에 오거스트 덜레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석인」에 대해 “러브크래프트가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단편도 도와줬어요. 사실 러브크래프트가 문단마다 다시 쓴 셈이죠. 문단 하나하나 평가를 하면서 옆에 표시를 하고선 자기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치라고 했거든요.”라고 밝힙니다. 러브크래프트가 힐드의 초안을 수정하다가 나중에는 힐드의 줄거리나 주제 정도만 채택하여 본문 전체를 다시 썼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인간이 돌이 되는 석화 과정과 삼각관계는 러브크래프트 서클에서 소개한 로버트 W. 체임버스의 「가면 Mask」을 떠올리게 하는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다만 두 작품 간의 관련성이나 영향 관계를 단정 짓기는 어려운데요.
애디론댁 북부의 어느 작은 마을에 있다는 불가사의한 조각상. 이 소식을 접한 화자와 그의 친구가 그곳을 찾아나서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폭력적인 남편을 둔 여자와 섬세한 예술가 사이의 끌림은 꽤나 흔한 얘기인데요.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의 작품에 용인한 이 이질적인 로맨스에도 잊지 않고 크툴루 요소를 첨가합니다. 『에이본의 서』, 차토구아, 천 마리 새끼를 거느린 염소(슈브-니구라스) 그리고 로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