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의 거주자
“러브크래프트 서클”은 H. P. 러브크래프트를 중심으로 세계관을 공유하는 일군의 작가와 그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려는 시도입니다.
아이하이 족의 화성을 무대로 황금과 대박을 쫓는 세 지구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지구인 보물 사냥꾼들은 탐험 중에 ‘차우르’라는 폐허 지역에서 모래폭풍을 만나 어느 동굴로 피신합니다. 지구인들은 모래폭풍이 지나가는 동안 시간을 때울 겸 그 동굴을 한 번 탐사해보기로 하는데요. 생각보다 깊은 지하로 향해지던 동굴이 낭떠러지로 바뀌고, 절벽 길을 따라 끝없는 심연이 이어집니다. 이따금씩 불가사의한 소리가 정체모를 음산한 공포를 전하다가 느닷없이 득시글거리는 눈먼 흰색 괴생명체들이 나타납니다. 화성인 아이하이 족과는 다른 동굴 화성인들인데요. 문제는 이들이 신적인 존재로 숭배하는 ‘심연의 거주자’입니다.
이 심연의 거주자는 크툴루 신화의 그레이트 올드원 계열에 속하는데요. 화성의 깊숙한 지하 세계를 지배하는 존재입니다. 생김새는 눈이 없는 거대 거북이와 아르마딜로를 연상시키는데 생명체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무기력과 혼수상태에 빠뜨리는 마취제를 발산합니다.
「요봄비스의 지하묘」에 이어 화성 연작에 속하는 이 단편은 스미스가 마음고생을 가장 많이 한 작품으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잡지사에서 스미스가 원치 않는 수정을 가한 것이 발단이었다고 합니다. 스미스는 대체로 출판사의 수정 요청에 유연하게 응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완강한 태도로 때론 편집자들과 충돌했던 러브크래프트와는 다른 면이기도 하죠. 그런데 이런 스미스가 수정 문제로 격분했던 작품이 이 「심연의 거주자」라고 합니다. 매체 특성상 SF 요소를 부각하려는 휴고 건스백의 《원더 스토리즈》와 호러 요소를 강조하고 싶었던 스미스의 의견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였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