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리꽃 연가
● 이 시집은 _
배정빈은 땅과 사람의 역사를 올곧게 시의 그릇에 담아내는 시인이다. 그는 기득권자들의 손으로 정전(正典)으로 고착화된 것들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전의 위력에 눌려 숨은 역사적 사실들에 새 의미를 입히는 작업에 몰두해 왔다. 살아있는 역사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재구성한 알레고리를 통해 바른 역사를 환기시키는 시적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즉, ‘마침내 다시 뭉쳤다, 해방 일주년 광복절에 민중과 함께 일어섰다 / 우리 쌀을 달라 나라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달라 외치는 소리 / 너릿재를 넘어간 행렬은 광주 미군정 지부 앞에서 붉은 꽃이 되어 떨어지고 / 백여 명 지사는 하늘에 별이 되었다 수백 명 의인은 다치고 상처 입었다 / 가슴에 품은 맹세는 깊은 막장 속에 묻히고, 살아남은 아버지 아들들 / 모후산 백아산 더러는 더 높고 험한 지리산 속으로 사라졌다 / 녹슨 철길은 아직 버티고 있어 그들의 함성 들리는 듯, / 돌아보니 탄광은 문이 닫히고 상처인 양 휑한 폐광 입구만 보인다’(「남화순 철길을 걷는다」)는 알레고리는 배정빈 시의 미덕을 잘 보여준다. 단순한 폐광 지대처럼 보이지만 해방 후 가장 치열한 민중 생존권 투쟁과 반외세의 거점이라는 사실을 잘 환기하고 있다. 은폐된 역사적 사실과 풋풋한 서정, 그리고 명징한 이미지가 어우러진 배정빈의 시는 그런 점에서 그만의 넉넉한 영토를 확보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작은 시집 고마리꽃 연가는 그 같은 배정빈의 시적 역량을 잘 보여주는 마당이다.
-박몽구(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