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 삼국지’ 원서 65권 중에서 거의 절반인 30권의 방대한 분량이 바로 ‘위서’이고, 이 위서의 주인공은 조조이다. 환관의 자손으로 비주류의 설움을 딛고 일어선 영웅이었던 조조는 참혹한 후한의 상황을 목격하고 백성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으며, 스스로 제위에 오르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가 아들 조비가 위나라를 창업하게 할 정도의 절제력도 있었다. 당시 조조의 위나라가 14개 주 가운데 10개 주를 장악하고 있었으며, 오나라가 3개 주, 촉나라가 1개 주를 차지하고 있었으니 당시 위나라의 위세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조조가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우선 인재 등용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조조는 인물을 등용할 때 ‘재능 있는 자만 추천된다.’는 논리를 내세워 덕망보다는 능력 위주로 인재를 발탁하였다. 심지어 형수와 사통했다거나 뇌물을 받은 자라도 능력만 있으면 따지지 않고 기용하였다. 이러한 용인술이 조조가 천하를 제패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위서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관도 전투’는 당시 가장 세력이 컸던 원소와 벌였던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조조는 파죽지세로 원소의 근거지를 함락하고 나아가 중원을 장악하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조조는 둔전제를 널리 시행했는데, 이로 인해 전란으로 파괴된 농업을 회복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또한 밖으로는 요동을 정벌하여 요동의 실력자인 공손연을 멸하고, 고구려와 만주, 부여를 정복했다. 220년, 조조는 66세의 나이로 붕어하고, 큰아들 조비가 제위를 이어받아 위나라를 창건한다. 그러나 위나라는 권신 사마의의 농락으로 점차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위나라는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의 손에 넘어가면서 220년부터 265년에 이르는 46년 역사를 마감하게 된다.
저자소개
자가 승조이며 파서군 안한현을 본적으로 하여, 위·촉·오 삼국이 팽팽히 대치하던 시기인 233년, 촉나라에서 태어나 진나라에서 벼슬하다가 원강 7년에 65세로 세상을 떠났다. 진수 부친은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다. 진수는 촉나라에서 관각령사를 지냈는데, 환관들이 전횡하고 조정의 신하들이 아부하는 것을 보면서도 뜻을 굽히지않아 결국 벼슬에서 쫓겨났다. 촉나라가 멸망한 이후에도 여러 해 동안 배척을 받아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다. 그 후 진나라(서진)에서 진남대장군 두예가 진수의 지식이 깊고 넓음을 알고는 표를 올려 산기시랑으로 추천했다. 진수가 자신의 임무를 훌륭히 감당했으므로 황제는 그를 다시 치서어사로 임명하여 곁에 두었다. 이후 모친이 돌아가시자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태자중서자로 기용되었으나 나아가지 않다가 병사했다. 진나라 무제 태강 원년(280)에 오나라가 멸망하는데, 이때 진수는 48세의 나이에 『정사 삼국지』를 완성했다. 저작으로는 『정사 삼국지』외에도 『고국지』50편, 『석휘』, 『광국론』, 『진박사』4권, 『진탄사』9권, 『익부시구전』10편, 『익부시구전갑기』2권, 『관사론』7편, 『제갈씨집』24편, 『한명신주사』30권, 『위명신주사』40권 등이 있다. 이상 12종의 저술은 모두 250여권(편)에 달하지만 그중에서 『정사 삼국지』가 가장 높이 평가 받는다.
목차
옮긴이의 말 5《정사 삼국지》 해제 10〈위서〉 해제 22위나라 가계도 30일러두기 421_무제기武帝紀위나라를 창업한 난세의 영웅 조조_무제기武帝紀 442_문제기文帝紀마침내 제위에 오른 수성守成의 제왕 조비_문제기文帝紀 1143_명제기明帝紀요절하여 제국의 몰락을 앞당긴 제왕 조예_명제기明帝紀 1384_삼소제기三少帝紀혈혈단신 외로운 제왕 조방_제왕기齊王紀 168사마씨의 허수아비 왕 고귀향공 조모_고귀향공기高貴鄕公紀 186나라를 들어 사마씨에 바친 비겁자 진류왕 조환_진류왕기陳留王紀 2125_후비전后妃傳가기歌妓 출신으로 조조의 황후가 된 여장부_무선변황후기武宣卞皇后紀 231두 영웅의 마음을 사로잡은 절세미인_문소견황후기文昭甄皇后紀 236남편 조비를 왕위에 앉힌 지략의 소유자_문덕곽황후기文德郭皇后紀 243조예의 총애를 잃고 자살하다_명도모황후기明悼毛皇后紀 249호족 출신으로 황후에 오르다_명원곽황후기明元郭皇后紀 2526_동이원유전董二袁劉傳대세를 타고 천하를 호령한 냉혹한 현실주의자_동탁전董卓傳 256오만방자하고 우유부단하여 천하를 놓치다_원소전袁紹傳 270도량은 좁고 모략만 좋아한 탕아_원술전袁術傳 287대세를 읽지 못하고 수성만 하다가 자멸하다_유표전劉表傳 2917_여포장홍전呂布臧洪傳용맹하나 미련하고 하찮은 것에 매달린 소인배_여포전呂布傳 298명분만 찾은 어리석은 의인_장홍전臧洪傳 3128_이공손도사장전二公孫陶四張傳기주를 놓고 원소와 겨룬 북방의 실력자_공손찬전公孫瓚傳 326서주를 쥐고 조조를 괴롭힌 무뢰한_도겸전陶謙傳 335헌제에게 식량을 바치고 여포를 도우려다 살해되다_장양전張楊傳 338고구려까지 공격한 요동의 패자_공손도전公孫度傳 341도적 출신으로 공을 세운 호걸_장연전張燕傳 347조조의 두 아들을 죽이고도 투항하여 공을 세우다_장수전張繡傳 349도술로 30년간이나 한중에 군림한 기인_장로전張魯傳 3519_제하후조전諸夏侯曹傳전투마다 선봉에 선 외눈의 맹장_하후돈전夏侯惇傳 356지략과 용맹을 겸비한 야전 사령관_하후연전夏侯淵傳 361하늘이 내린 장수_조인전曹仁傳 368타던 말을 내주어 동탁 군에 쫓기던 조조를 구하다_조홍전曹洪傳 375조씨 가문의 천리마_조휴전曹休傳 378제갈량의 북벌을 여러 번 물리치다_조진전曹眞傳 382오나라 정벌로 조비의 신임을 받다_하후상전夏侯尙傳 39510_순욱순유가후전荀彧荀攸賈 傳조조를 통해 한실 재건의 의지를 불태우다_순욱전荀彧傳 414패업의 비책을 제시한 천하 재사_순유전荀攸傳 431관도지전의 일등 공신_가후전賈 傳 44011_원장양국전왕병관전袁張 國田王 管傳둔전제를 입안하다_원환전袁渙傳 454헐벗은 백성을 구제한 청백리_장범전張範傳 461공손도를 꾸짖어 조조와 싸우지 못하게 하다_양무전 茂傳 465둔전을 책임져 나라 살림을 살찌우다_국연전國淵傳 468한번 섬긴 주군을 잊지 않은 굳센 절개_전주전田疇傳 471주군 원담의 시신을 거둔 의인_왕수전王脩傳 480매사를 덕과 예로써 처리하다_병원전 原傳 486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은 은자_관녕전管寧傳 49012_최모서하형포사마전崔毛徐何邢鮑司馬傳인물 품평에 능했으나 조조를 풍자하다 죽임을 당하다_최염전崔琰傳 508최염을 두둔하다 화를 당하다_모개전毛 傳 516엄격한 인사로 반란을 예방하다_서혁전徐奕傳 523도덕성과 객관성에 입각한 인재 선발을 제안하다_하기전何夔傳 526조조에게 적장자 계승 원칙을 직언하다_형옹전邢 傳 533직언을 그치지 않다가 조비의 미움을 받아 죽다_포훈전 鮑勛傳 536곧은 태도로 황후의 청탁에도 굴하지 않다_사마지전司馬芝傳 54213_종요화흠왕랑전鍾繇華歆王朗傳국가의 심려心 로 불린 명재상_종요전鍾繇傳 552청렴하여 받은 재물은 돌려주고 노예는 풀어주다_화흠전華歆傳 564관대한 법 집행으로 칭송받다_왕랑전王朗傳 57314_정곽동유장유전程郭董劉蔣劉傳원소와 손잡으려는 조조를 만류하다_정욱전程昱傳 600애석하게 요절한 조조의 명참모_곽가전郭嘉傳 613군사와 정치 양면에 능한 재사_동소전董昭傳 620위나라를 위해 헌신한 한 왕실의 후예_유엽전劉曄傳 636계책으로 손권을 끌어들여 관우를 격파하다_장제전蔣濟傳 649국가 문서를 관장한 명문장가_유방전劉放傳 66215_유사마양장온가전劉司馬梁張溫賈傳폐허가 된 합비를 재건한 목민관_유복전劉馥傳 670인물 품평과 고전에 능한 사마의의 형_사마랑전司馬朗傳 675선비족 정벌에 공을 세운 자_양습전梁習傳 682서쪽 변방 옹주와 양주를 안정시키다_장기전張旣傳 685관우가 조인을 공격할 때 구원하다_온회전溫恢傳 694옥새를 노리는 조창을 꾸짖다_가규전賈逵傳 697위나라 연표 707찾아보기 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