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근대다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한 디자인 평론가의 근대성 연구저자 최범의 이념 지형은 매우 특이한 케이스다. 30여 년 간 시각예술 분야의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그 어느 사회과학도 못지않게 한국의 근대와 근대성에 깊은 관심과 연구를 기울여 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의 시각예술 비평조차 실은 한국 근대 연구의 일환인지 모른다. 시각예술 속의 한국 근대성, 또는 한국 근대 속의 시각예술을 읽어내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래서 미술, 디자인, 공예 등 무엇을 다루든지 간에 그의 비평은 언제나 사실상 한국 근대 비평이었다.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던 1980년대 10년, 민중문화운동에 투신한 1990년대 10년, 시민문화운동에 참여한 2000년대 10년을 합친 지난 30년 간 좌파 지식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왔던 그는 한국의 식민지적 근대의 현실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을 통과하면서 좌파의 정체성에 커다란 의문을 갖게 되었다. 586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과연 좌파인가. 한국의 좌파란 무엇인가. 그 결과 도달한 그의 결론은 한국 좌파는 사회주의자도 민족주의자도 아닌 전근대 집단이라는 것이다. 좌파가 말하는 사회주의는 사실상 전근대 농촌 공동체가 모델이며, 민족주의는 전근대의 종족을 준거집단으로 하는 것이었다. 한국 좌파는 바로 전근대 문명의 담지자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기본 모순은 계급 모순도 민족 모순도 아닌 전근대와 근대의 문명 모순이라는 게 더 정확한 말일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좌파일 수 없었다. 극도로 혼란스러웠던 생각을 정리하니 한국 사회를 보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