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다정한 아비, 김용환
“내 평생을 바쳐 쓴 가면이네.”
조선 후기, 집안의 재산을 몽땅 털어먹는 난봉꾼을 일컫는 말 '파락호(破落戶)'.
여기, 일제강점기 안동 바닥에서 조선 최고의 파락호라 손가락질받던 한 사내가 있다. 영남 유림의 거두인 학봉 종가의 13대 종손 김용환. 그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전답 18만 평을 화투판에 날려버리고, 급기야 하나뿐인 외동딸이 시집가는 날 혼숫돈마저 노름 밑천으로 빼돌려 야반도주한다. 딸은 시댁 모래밭에서 도끼에 찍혀 박살 나는 헌 장롱을 보며 아버지를 향한 뼈저린 증오와 수치심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 미친 노름꾼의 탈 뒤에는, 얼어붙은 만주 벌판에서 죽어가는 독립군 동지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명예와 가족의 행복마저 제물로 바쳐야 했던 처절하고 다정한 아비의 눈물이 숨어 있었다.
현장에서 팩트를 좇으며 현상 이면의 진실을 기록해 온 신화준 작가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이 단편소설을 통해 서늘하고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돈과 자본이 곧 권력이 되어 타인을 무시하고 군림하는 현대판 '파락호'들이 판치는 21세기의 대한민국. 우리는 과연 김용환 지사가 평생의 수치심을 짊어지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진정한 가치'를 기억하고 있는가?
치밀한 고증과 극적인 액자식 구조, 그리고 무엇보다 숨이 막힐 듯 생생한 1인칭 독백으로 쓰인 이 소설은, 마지막 에필로그에 이르러 독자들에게 걷잡을 수 없는 카타르시스와 뜨거운 눈물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