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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뿌리 삶의 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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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뿌리 삶의 줄기

저자
김선화 저
출판사
유페이퍼
출판일
2026-04-02
등록일
2026-06-12
파일포맷
PDF
파일크기
842KB
공급사
YES24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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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나에게 “고향이 어디냐”라는 질문은 친절한 안부라기보다 늘 미뤄둔 숙제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고향을 묻는 말에 곧바로 어느 정겨운 동네를 떠올리며 미소 짓는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마음속에서 여러 장소를 헤매다 결국 적당한 이름을 골라내야 하기 때문이다.<br /><br />내 고향은 명확한 지명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저 흩어진 감각과 모호한 경계선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을 뿐이다.<br /><br />글을 쓰려고 펜을 들어도 ‘내가 살던 고향은’이라는 문장 뒤에 선뜻 잉크를 찍지 못했다. 추억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기억들이 서로 다른 도시와 이름으로 조각나 있기 때문이다. <br /><br />뿌리는 경북 현풍의 논길에, 성장의 기록은 부산의 골목에, 그리고 현재의 대답은 대구라는 이름에 머물러 있는 나의 정체성은 마치 이식된 나무처럼 위태로웠다.<br /><br /> “뿌리가 뽑혀 다른 땅으로 옮겨질 때,<br />여린 줄기가 겪었을 몸살을 기억한다.” <br /><br />존재의 근원을 설명할 명확한 단어를 찾지 못해 마음 한구석이 늘 허전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호함’조차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br /><br />정체성이란 반드시 하나의 점으로 고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강물처럼 여러 지류가 모여 이루어지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br /><br />돌이켜보면 내 무의식의 가장 깊은 곳, 그 ‘뿌리’의 시작점은 경북 달성군 현풍면의 쌉싸름한 농약 냄새와 수수를 태우는 구수한 냄새였다. 누구의 등이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한 아기였을 때, 그 지독하고도 서늘한 향기는 나를 업어주던 이의 넓은 체온과 섞여 ‘안전함’이라는 첫 번째 감각을 내 영혼에 각인시켰다.<br />비록 행정구역이 바뀌어 고향의 이름이 ‘대구’로 덧칠해졌을지라도, 대구라는 이름 속에 현풍의 푸른 벼를 품고 부산이라는 터전 위에 이웃의 온기를 채우며 살아온 모든 시간이 내 삶의 터전이고 고향이다.<br /><br />정립되지 않은 파편 같은 기억들이 모여, 비로소 나는 단단하게 가지를 뻗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었다. 나의 고향은 지도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길을 걸어온 내 걸음걸음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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